포인트호프에서의 사흘을 나는 그렇게 빈둥거렸다. 동네 사람들은 언제부터 나를 알았다고, 길거리에서 마주치면 눈웃음을 치며 손을 흔들었다. 둘쨋날부터는 나도 따라했다. 남의 집 식탁을 싹슬이하고 소파와 텔레비전 중간에서 뒹굴다 시시콜콜한 동네 소문들도 주워들었다. 벨루가 고래 수프를 끓여준 엠마 키니바크는 페어뱅크스로 유학까지 다녀온 똑똑이지만 백혈병에 걸려 고향 마을로 돌아와 공무원으로 있다든가, 고래 고기를 잘라 준 팝시와 에바 키니바크가 포인트호프의 복음화에 앞장서는 독실한 기독교인이라든가, 일본인 청년 신고가 15년 째 여름마다 포인트호프를 찾아온다는 등이었다. 에스키모가 되고 싶던 이 말 없는 소년은 어느 날 무작정 포인트호프로 찾아와 바닷가에 텐트를 쳤단다. 동네 사람들이 그날 밤 손짓 발짓으로 “이러다 북극곰에게 잡혀 먹힌다”며 마을로 데려와 귀한 생명 하나 구했다고 한다.
하루는 마을 외곽 고래뼈 무덤에 앉아서 징징 짜는 비행 청소년 상담도 해 줬다. 조카를 봐 주러 오빠네 갔는데, 오빠가 배고프냐고 물어보지 않았다는, 나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일이, 그의 고민이었다. 포인트호프에서는 누구든 다른 사람의 집에 들어가 냉장고 문을 열고 먹고 마실 권리가 있다. “안녕하세요” 대신 “배고프지 않니?”가 인사다. 틈틈이 일도 했다. 레게머리에 검정 선글라스를 낀 ‘양아치’ 포스의 부족장 잭 세이퍼를 만났고, 인디언과 에스키모의 혼혈인 시 정부 공무원 릴리 투츨루유크를 인터뷰했으며, 전현직 고래잡이 선장들을 만나 지구 온난화로 겪는 고충에 귀를 기울였다. 결코 이 글이 나를 출장 보낸 매체에 실리기 때문에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포인트호프 부족장 잭 셰이퍼. 한 때 좀 놀아보신 포스다)
포인트호프의 고래가 줄어드는 것은 사실이었다
루크는 포인트호프의 소년이면 누구나 그랬듯 열세 살부터 고랫배를 탔다. 고래잡이는 그들이 가혹한 북극에서 살아남는 생존 방식이었다. 젊고 힘깨나 쓰는 장정 30여명이 고랫배의 선장을 맡았고, 배마다 10여명의 선원이 따라붙었다. 여자들은 봄이 오기를 기다리며 우미아크를 수선했다. 물범의 가죽 예닐곱 장을 붙여 만드는 고래잡이 보트다. 나무배는 빙산과 충돌하면 그대로 박살나지만, 우미아크는 급한 대로 재빨리 꿰매 쓸 수 있다. 고래잡이 시즌이 되면 마을 전체가 흥성거렸다. 남자들은 작살과 노를 손에 들고 바다로 나갔고, 여자들은 바닷가에 텐트를 치고 스토브에 물을 끓였다. 지난해 잡은 고래는 이미 바닥이 났고, 새알을 줍고 열매를 따기엔 이른 계절이었다. 먹을 것이라고 해 봐야 차와 비스킷이 전부였다.
지금은 집에서 스파게티를 삶고 도넛을 데워 스노머신에 실어 배로 보낸다. 예전처럼 목숨을 걸고 작살을 던지는 대신, 총을 쏘아 잡는다. 사람들은 더 이상 카리부 가죽으로 만든 파키나, 울버린 털로 만든 부츠, 마클락을 신지 않는다. 고래 뼈와 카리부 가죽으로 지탱한 땅속 집에서 나고 자란 루크는 조립식 주택의 거실에 앉아 인터넷으로 미국 본토의 손자들을 만난다. 인생은 너무, 쉬워졌다. 그의 한 평생 동안 모든 것이 변했다. 변하지 않은 것은 예나 지금이나 그의 옆에 앉아 있는 부인 앤지 뿐이다. 부모를 잃고 친척에게 입양돼 포인트호프로 온 소녀는 에스키모 언어 이누피아크를 말하지 못해 외톨이가 돼 울고 있었다. “그 때 루크가 나를 알아봐줬지. 조숙한 소년이었어. 나는 아홉 살, 루크는 열두 살. 우리는 좋은 친구가 됐고, 스무 살이 되던 해에 결혼했어.”
(할머니가 만들어준 전통 파키를 입고 활짝 웃는 설정의 에스키모 소녀)
팝시 키니바크는 처음 고래를 잡았던 그 날을 아직도 기억한다
콧수염을 길러 에스키모보다는 중앙아시아의 부족장처럼 보이는 팝시는 포인트호프에서도 알아주는 동네 유지였다. 조립식 주택이지만 서울의 34평 아파트보다 큰 집에서 없는 것 없이 산다. 선물이라고 파인애플을 내밀었는데, 바나나를 넣고 구운 케이크를 잘라 주는 바람에 민망했다. 냉장고에는 가족 여행으로 다녀온 하와이 워터파크 사진이 붙어 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여전히 고래를 잡고, 겨울이 되면 전통춤을 연습해 페어뱅크스에서 열리는 ‘에스키모 올림픽’에 나간다. 에바 키니바크는 세상에 별 일도 다 있다는 말투로, “신고가 일본에서 처음 왔을 때 보니 음식을 숨기고 먹더라고. 우리가 에스키모 문화를 가르쳐야 했어. 눈을 마주치면 인사하는 법, 음식을 함께 나눠 먹는 법, 그런 거 말야”라고 했다. 나는 귀를 의심했다. 북극의 조그만 마을에서 고래를 잡아먹고 사는 사람들이 세계 최고의 경제대국 일본, 그것도 도쿄진에게 ‘미개하다’고 훈계하는 것이었다. 신고는 멋쩍은 웃음만 짓고 있었다. 포인트호프의 그들처럼 자부심과 자존감이 드높은 원주민 집단을 그 전에도, 그 후에도 나는 본 적이 없다.
(마을 외곽의 고래뼈 무덤에서 비행하고 있는 청소년들. 둘은 '보이'와 '프렌드'사이다)
그러나 알래스카의 여느 원주민 마을처럼 포인트호프도 높은 청소년 자살율과 마약 문제를 겪고 있다
공항에는 비릿한 고래 비린내가 안개처럼 깔려 있었다. 비행기 프로펠러 아래서 조종사가 출석을 불렀다. “아...묭아이초이? 몸무게는요?” 비행기가 작아 무게 균형을 맞춰야 하기 때문이다. 좌석도 시키는 대로 앉아야 한다. 뒷좌석 사람이 어깨를 쳤다. 팝시 키니바크의 아내, 에바였다.
“가는 거야?”
“아, 네.”
“다음에 칼르기 때 다시 와. 6월에 하는 고래축제인데, 그 때는 정말 볼만하다우. 참 그런데...”
에바가 귓속말이라도 하듯 몸을 붙여왔다.
“‘조’라는 설교자가 있지 않나? 미국 한인 방송에서 봤는데...정말 복음이 가득하신 분이더라고. 한국 가면 꼭 한번 이야기 해 줘요. 여기 북극 에스키모들이 설교해 주십사 한다고.”
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님, 알래스카 에스키모의 성도들께도 복음의 은총을 꼭 한번 부탁드립니다.
'terra incognita'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알래스카 위티어-알래스카에서 가장 이상한 마을, 탈출하라! (0) | 2011.07.10 |
---|---|
알래스카 포인트호프(1)-이토록 많은 멸종위기종을 먹어치우고, (3) | 2011.06.12 |
알래스카 포인트호프(2)-순복음교회 설교를 기다리는 에스키모들 (2) | 2011.06.12 |
알래스카 앵커리지-캡틴 쿡! 에스키모를 부탁해 (0) | 2011.05.23 |
캐나다 처칠(3)-북극곰은 쓰레기장을 어슬렁거리고... (1) | 2011.05.18 |
캐나다 처칠(1) 우리는 북극곰을 보러 가기 위해 결혼했다 (0) | 2011.05.05 |
댓글을 달아 주세요
너무 재밌게 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3년전에 저도 알래스카 다녀왔습니다. 렌트해서 달튼 하이웨이 따라 데드호스 다녀왔는데, 가는길의 풍광을 잊을수가 없네요. 전에 어느 신문기사에서 본것같은데 북극곰님은 한겨레 기자가 아니신지요?
노아 방주 발견 뉴스 보시러 오세요. 성탄절 맞아 츄리도 예쁘게 했습니다. 그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