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스발바르 유일의 수퍼마켓, 스발바르부티켄에 가서 식빵을 한 줄 사 왔다. 빵 봉지에 북극곰이 그려져 있었다. 이제와 새삼 생각하지만, 스발바르에서 ‘북극곰의 위협’은 박물관이나 테마파크나 국립공원과 같은 관광 어트랙션이 아니었던가 싶다. 스발바르의 인구는 1800명, 북극곰은 5000~7000마리. 그러나 사람들은 좁은 마을에 모여 살고, 북극곰은 광활한 스발바르 제도 전역에 퍼져 산다. 말하자면 ‘곰구밀도’가 낮은 것이다. 일주일, 길면 한 달 머무는 관광객이 북극곰을 만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롱이어비엔에 곰이 나타난다면 그건 지역 신문 ‘스발바르 포스텐’ 1면 톱거리다.
그러나 스발바르에서 북극곰은 실체는 아니고, 상품이나 이미지로 도처에 출몰한다. 빵봉지에도 있고, 수퍼마켓 비닐봉지에도 있고, 모든 브로슈어와 포스터에도 있고, 심지어 짐승의 가죽을 벗기고 빨갛게 물든 피바다에서 북극곰이 쓰윽, 피로 물든 입을 닦는 엽서도 판다 (이걸 도대체 누가 살 거라고 생각하는 걸까). 북극곰 모양의 귀걸이도 판다 (내가 샀다). 그러나 어쨌든 북극곰의 위협 때문에 ‘독립 여행’은 불가능하다. 패키지 당일 투어에 잇달아 사인하고 돈을 내고 나니, 북극곰의 위협이란 게 스발바르 관광 산업 진흥을 위해 관광업계와 스발바르 정부가 짜고 만든 게 아닌가 싶었다. 의심을 가득 담아 째려보자 트레킹 가이드가 두 손을 저으며 펄쩍 뛰었다. “스웨덴 교사가 롱이어비엔 뒷빙하에서 곰한테 습격당해 죽었다는 이야기 못 들었어?” 흠, 그게 언제였는데? “...8년 전에...딱 한번...”
(트레킹을 마치고 돌아오는 관광객들. 저 뒤로 롱이어비엔 전경이 보입니다)
어쨌거나 우리도 롱이어비엔 뒷빙하 트레킹을 하기로 했다. 사냥총을 어깨에 짊어진 가이드 지그문트가 앞장서고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왔다는 중년 커플, 이탈리아에서 왔다는 가족, 광부 숙소에서 만난 지성인 형제, 인간 북극곰과 나 둘, 그리고 가이드 크리스틴 순서였다. 남아공 커플은 돈이 주체할 수 없이 많은 한량들로 보였다. 북극 크루즈를 타고 왔다는데, 롱이어비엔 시내의 등산용품 가게에서 바지, 재킷, 등산화, 등산용 지팡이와 아이젠까지 일습을 장만했다. 이 비싼 북극에서!
이탈리아 가족은 교대로 싸워댔다. 큰 딸이 화를 내고 나면, 둘째 딸이 발을 구르고, 막내가 엉엉 울었다. 슬슬 비만 단계에 접어들고 있는 아빠는 계속 이마의 땀을 닦았다. 세계 어디나 아빠는 괴롭다. 지성인 형제와 우리 둘은 묵묵히 그들의 뒤를 따라 걸었다. 지성인 형제는 오슬로 대학 박사과정 학생들로 판명됐다. 역시, 지성인이었다. 두 사람은 한 해 내내 아르바이트로 돈을 모아 스발바르에 일주일 동안 왔다.
(우리 앞을 기다리고 있는 운명을 모른 채 묵묵히 빙하를 향해 걸어가는 일행들.)
우리의 루트는 롱이어비엔 뒷빙하, 롱이어 빙하였다. 빙하의 왼쪽 봉우리를 타고 올라간 뒤 빙하를 타고 내려오는 4시간 코스다. 여름 한 철만 얼음이 풀리는 땅은 폭신폭신했다. 스폰지를 밟는 기분이었다. 개울도 잇달아 건넜다. 빙하가 녹은 물이 졸졸 흘러 만들어진 개울이었다. 한 시간쯤 올랐을까. 남아공 아저씨가 두 팔을 번쩍 벌렸다. “오, 정상! 저 아름다운 풍경 좀 보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눈부신 빙하를 정면에서 본 게 아니다. 안개가 너무 짙어서였다. 점심시간이었다.
“자, 도시락 싸 오라는 설명 들으셨죠? 저런, 어떡하지. 커피와 비스킷이라도 드셔야겠네요” 선생님 말씀 잘 듣는 한국인인 우리 둘만 도시락을 싸 왔다. 식빵 사이에 계란 스프레드를 바른 우리의 울트라 초 소박 샌드위치를 이탈리아 가족도, 지성인 형제도, 심지어 남아공 한량 커플도 부러운 듯이 쳐다봤다. 바람을 피하는 척 하면서 바위 뒤로 갔다. 숨어서 마저 다 먹었다. 달고 뜨끈한 커피도 한 모금 홀짝 마셨다. 녹다가 얼던 발도 풀리는 것 같았다.
오후부터는 본격적인 빙하길이었다. 크리스틴이 배낭에서 로프 뭉치를 꺼내더니 한 사람씩 차례로 묶었다. 순식간에 굴비 두름에 엮인 꼴이 됐다. 영어의 몸이 되어 단장의 미아리고개를 넘고 있는 전쟁 포로를 생각하면 된다. 크레바스 때문이었다. 빙하 틈새로 떨어져 영원히 돌아오지 못할 것을 막기 위해 사람으로 저지선을 치는 거다. 서로가 한 몸이라는 동지애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앞을 쳐다봤다. 이탈리아 가족은 여전히 투닥거렸고, 남아공 아저씨는 도처에 키스를 날리며 “뷰티풀”을 연발하고 있었다.
지그문트가 조용히 다가왔다. “저기, 근데 눈 위에서 걸어본 적 있어요?” 멀고 먼 동양의 신비한 나라에서 온 내가 가장 걱정거리였나 보다. “그럼요, 겨울에 눈이 얼마나 많이 오는데.” “음, 그래도 쌓이지는 않죠?” “한국은 말이죠, 당신 생각보다 훨씬 북쪽에 있어요. 아니, 당신들 말야, 한국이 태국 옆 어디라고 생각하는데...” 굴비 두름에 엮이지 않은 지그문트는 잽싸게 대열 앞으로 내뺐다. 내 뒤로는 인간 북극곰이 외로이 자신의 ‘빙하 삼겹살’ 이론을 완성하고 있었다. 남극과 북극과 칠레의 빙하를 모두 본 북극곰에 따르면 빙하는 ‘삼겹살’ 구조다. 맨 밑바닥이 물, 가운데가 얼음, 표면이 눈이다. “즉 삼겹살의 살코기-비계-껍질과 대응한다고 할 수 있어. 크레바스는 ‘찢어진 삼겹살’, 얼음이 없는 빙하 지류는 ‘이겹살’이라고나 할까.” 내가 과연 이 사람들을 믿고 빙하를 건너야 하는 것일까.
(조용히 줄을 지어 걷고 있는 빙하 트레킹 동지들. 형광색으로 가방을 싼 두 남자가 지성인 형젭니다)
빙하 트레킹은 싱겁게 끝났다
. 비명을 지르며 크레바스 틈으로 사라지는 사람도 없었고, 북극곰이 쫓아오지도 않았다. 맹렬하게 떠돌던 사람들이 지쳐 조용해질 무렵엔 정말로 어디선가 졸졸 물소리가 들렸다. 저 아래 빙하의 밑바닥은 얼마나 고독할까. 트레킹의 마지막은 화석줍기였다. 빙퇴석 무더기로 우리를 인도한 두 가이드는 “자, 마음껏 골라 잡으세요!” 라며 팔짱을 끼고 앉았다. 자갈 더미를 잘 뒤지면 나뭇잎이나 은행잎 모양이 찍힌 화석이 나온다. 지금은 풀 한 포기 보기 어려운 툰드라 지대지만 6000만년 전 이곳은 울창한 숲이었다. 믿을 수밖에 없다. 돌 열 개도 채 뒤지기 전에 내 손에도 희미한 나뭇잎의 윤곽선이 찍힌 돌이 쥐어졌으니까.지금 스발바르에서는 전세계 200만종의 식물 씨앗을 보관할 저장고를 짓고 있다. 이름하여 ‘노아의 방주’ 프로젝트다. 폐광된 롱이어비엔 3호 광산 아래 지하 50미터에 동굴을 만들고, 1미터 두께의 벽을 세워 씨앗을 보관하게 된다. 노르웨이 정부가 건설 비용을 대고, 지구곡물다양성트러스트가 운영 비용을 맡기로 했다. 운영 기간은 영원. 지구 최후의 날이 오면 이 씨앗들이 날아가 생육하고 번성해 미래의 세대들을 먹일 것이다. 6000만년 뒤, 혹은 그 보다 더 먼 미래의 후손들에게 지금의 인류가 주는 선물이다. 마음은 헤아릴 수 없이 까마득한 시간대를 여행하는데, 이탈리아 꼬마가 다가와 갑자기 손을 내밀었다. 은행잎이 선명하게 그려진 화석이었다. “예쁘구나.” 아이가 으쓱한 표정으로 검지 손가락을 코 밑에 문질렀다. 코 밑이 새카매졌다.
(고이 닦아 창틀에 말려둔 화석들. 오른쪽의 모자가 여기 어디에 나오는 '나의 몹시 사랑하는 우크라이나 모자' 되겠습니다)
숙소에 돌아와 미지근한 물을 틀어 놓고 주워온 화석들의 흙을 떼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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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잘 읽고 갑니다. 기자님 덕에 미처 있는 줄도 몰랐던 마을을 알게 되네요. 사진 보고 있으니 참 시원하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