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제목은 '동물원의 탄생'이지만, 원래 영어식 제목은 '야만과 야수 Savages and Beasts'다. 그러나 사실 이 책은 '하겐베크 동물원 이야기'다. 하겐베크는 독일의 유명한 동물원 이름이자, 그 동물원을 만든 사람의 이름이다. 독일 함부르크에서 생선장수를 하던 하겐베크네 집안은 세기말과 세기초,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동물 무역을 해 큰 돈을 벌었다. 유럽에선 '동물원=하겐베크'라는 인식이, '케첩=하인즈' '햄버거=맥도날드' 수준이란다.

사실 이 책은, 언젠가 서평에서 보고 점찍어 두었는데, 남편이 마침 채식까페에 갔다가 비싼 값(!)을 주고 사 왔다. '환경과 생명'이라는 단체에서 꼽은 '우리시대의 구명보트' 100권 중의 한 권이기도 하다. 채식주의, 평화주의, 생태주의 어쩌고에 끼어 있었으니, 읽기도 전에 짐작하는 바, '동물원은 이제 그만!' 일,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처음 '이제는 동물의 동물권을 생각해야 할 때, 그간 우리는 얼마나 야만적이었나'로 기세 좋게 출발하던 이 책은, 마지막에 이르러 모호한 태도로 꼬리를 내린다. 쓴 작가가 이러하니, 읽는 독자는 얼마나 혼란스러웠겠나. 정말, 막판엔 머릿속이 뒤죽박죽 되는 기분이었다. 몇년 전 대학로에서 '제 3세계와 신제국주의와 어쩔 수 없는 돈의 논리와 문화의 상대성' 등등을 취재하러 간 남편을 기다리며, 나는 찻집에서 다리를 달달 떨며 읽었다. 거기다, 깜빡 잊고 지갑을 안 가져 가서, 남편이 올 때까지 찻집에 '감금'돼 있었다. 6시에 온다던 이 사람은 7시 넘어, 7시30분이 넘어도 아니오더니, 결국 7시52분에 왔다.

여튼, 다시 하겐베크. 연극 '빨간 피터의 고백'을 본 사람이면, 거기에 나오는 '하겐베크'라는 이름을 기억할지도 모르겠다. 유인원인 빨간 피터는 하겐베크 '사단'에 붙잡혀 유럽으로 실려 온다. 하겐베크는 그 시대의 가장 유명한 동물 중개상이었다. `하겐베크가 떴다 하면, 표범도 코끼리도 치타도 원숭이도 모두 벌벌 떨었다'는 당시 시사만평이 있다. 그가 유독 잔혹해서는 아니었고, 그가 가장 대표적이고, 영향력이 큰 중개상이기 때문이었다. 하겐베크는 '동물원 업계' 최초로, 본격적인 의미의 현대 동물원을 만들었고, 나중에는 이를, 지금 우리가 외국에서나 보는 '생태 동물원'으로 개량했다.

라인홀트 메스너가 세계 등반의 변화를 견인했다면, 하겐베크는 동물원의 역사를 이끌고 바꿨다. 누구보다도 먼저, 대중이 원하는 것을 알아차렸고, 대중이 원하는지 안 원하는지 헷갈리던 시절에도 분연히 먼저 나서 대중이 원하도록 만들었다. 특히 생태동물원이 그렇다. 하겐베크는 '동물이 보다 편안한 환경에 살게 하기 위해' 생태동물원을 만들었다고 발표했지만, 진짜 이유는 '사람들은 동물이 창살에 갖혀 있는 것을 보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이런 잔머리를 100년 전에 굴리다니.

하겐베크를 누구보다도 유명하게 만든 것은, 그가 동물원에 '사람들을 전시했다'는 사실이었다. 하겐베크는 1900년대 초기 몇십년에 걸쳐 그린란드, 모하이섬, 아프리카 등지에서 '가족들'을 데려와 동물원에 풀어놓고 살게 했다. 이렇게만 쓰면 잔인해보이는데, 또 따져보면 그렇지도 않다.

당시엔 '외국인 쇼'가 유행이었다. 마치 뉴욕 극장에서 킹콩 쇼를 하듯, 대형 극장에 배경화면 그려넣고 인디언과 미군이 전쟁을 재현하는 류의 쇼가 인기를 끌었다. 우리의 하겐베크가 곰곰이 보니, 사람들은 그런 '가짜쇼' 대신, '원시인'의 평범하고, 전통적인 일상의 모습을 보고 싶어하는 게 아닌가. 그래서 그는, 그렇게 했다. 대중은 열광했고, 미디어는 '최고의 교육 기회'라고 극찬했으며, 인류학자와 문화학자들은 하겐베크 동물원의 뒤를 따라다니며 사진을 찍고 인터뷰를 해 인류학 자료를 확보했다. '원시인'들은 '돈을 벌기 위해' 앞다퉈 하겐베크를 따라나서겠다고 했는데, 덴마크 정부의 경우엔 그린란드 주민들의 '남하'를 법으로 막아야 할 정도였다.

이 '사람쇼'는 그리 오래 가지는 못했다. 유럽으로 온 '원시인'들은 금세 담배를 피우고, 클럽에서 차를 마시고, 트럼프를 배웠다. '대중'들은 그것을 원하지 않았다. 인류학자들은 돈과 노력을 들여서라도 직접 '현장조사'를 해야겠다, 고 결론내렸다. 그래서 하겐베크는 사람쇼를 폐기하고, 꿈과 사랑의 환타지 쇼를 만들었다. 인도인들이 낙타를 몰고 사막을 넘으며 마법을 배우고, 이야기를 듣고 어쩌고 하는 대규모 쇼다. 우리가 태국 고산족 마을에서 보는 '고산족 쇼'나, 캄보디아 앙코르와트에서 보는 '압사라 쇼'나, 다르지 않다.

작가는 마지막에 이르러, 하겐베크가 동물원의 역사를 견인했다는 점을 인정하고, 하겐베크 자신이 대단한 동물애호가였음은 부정할 수 없다, 고 썼다. 그리고 동물원이 없었다면 이 강팍한 20세기에 저만큼이라도 희귀동물이 보존될 수 없었으리라고도 썼다. 또 동물원은 후대 세대를 위한 훌륭한 교육의 장소임을 부정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뒤에 5줄 정도 덧붙여 '이제는 동물의 권리도 생각할 때'라고도 썼는데, 그 결론은 빈약해보였다.

책은 동물원보다는 오히려, '약한 것'에 대한 시각과, '돈의 논리'에 대해 생각할 바가 많았다. 특히 '원시인'들이 자발적으로 동물원에 전시됐다는 점은 더욱 고민스럽다. 그들이 원하고, 대중이 원하는데 누가 무슨 권리로 '인도주의'를 끌어다 말릴 것인가. 농촌 총각이 원하고, 베트남 처녀가 돈을 벌기 위해 한국에 오길 원하는데, 누가 뭐라고 말릴 건가. 미국인이 원하고, 미국 가서 잘 살아보겠다고 '언니'들이 선보러 미국 간다는데, 그걸 뭐라고 말릴 수 있나.

지지난해 겨울 태국 북부 고산족 마을에서 '고산족 쇼'를 볼 기회가 있었다. 여덟살, 아홉 살 먹은 아이들이 목을 길게 늘이기 위해 목에 링을 끼우고 춤을 추고 있었다. 사진을 찍다 말고, 지갑에서 되는대로 돈을 꺼내 집어줬다. 바보같은 짓이었다. 그들이 원하고, 관광객이 원하는데. 고산족 쇼는 태국 북부 관광의 인기 코스 중 하나다. 고산족 마을은 관광 수입으로 먹고 산다. '원래의 생활방식'으로 돌아가면 되지 않냐고? 그들은 주로 '마약'을 재배했다. 자, 어쩔건데? 아, 역시, 여전히, 모르겠다.


Posted by orca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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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딸기 2010.10.24 11: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미뇽이가 나더러, 명애씨한테 암체어 트래블 시켰냐고 해서 무슨 말인가 했더니 이 카테고리였구만. 실은 내가 블로그에 암체어 트래블러라는 카테고리를 만들고 뭔가 해보려다가... 포기했거든 ^^;;
    그러고보니 명애씨랑 나랑 관심사가 겹치는 구석이 많네. '동물'도 그렇고...
    <동물원의 탄생> 재밌지? 그런데 애들 그림책 중엔 '동물의 꿈은 동물원에 가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황당한 책들도 있다우...

  2. narwhal42 2010.10.24 17: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최명애 기자님, 아이디가 오르카네요. 그래서 제 아이디는 나왈로 했습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