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마르크스의 무덤이 있는 런던 하이게이트 묘지에 다녀온 적이 있다. 누구 칼럼에선가 보고, 몹시도 쓸쓸하고, 외롭고 스산하고 등등을 기대했으나, 그것 다 '초'였나보다. 이 묘지의 스타는 단연 마르크스. 묘지 입구 쇠창살에서부터 이렇게 마르크스씨가, 붙어 있다. '유명인 무덤은 여기에' 이런 묘지 지도도 판다.   
 


마르크스 흉상은, 민망할 만큼, 컸다. 예전의 차우체스크나 레닌 동상이 생각날 정도였는데, 사람들은 이 앞에서 셀카도 찍고, 기념사진도 찍고, 꽃다발도 갖다 놓았다. 마르크스의 원래 무덤은 좀 더 안쪽에 있었는데, 하도 찾는 사람이 많아서 1958년에 현재의 자리로 옮겨 놓은 것이란다. 흉상은 새로 만들었지만 이 '세계의 노동자는 단결하라'와 '철학은 이제 세계를 변혁해라'는 원래 무덤에 있던 것 그대로... 라고 지도에 나와 있었으나 금박이 아무래도 너무 신삥이다. 


마르크스 무덤 맞은편은 아이러니하게도, 자유주의 시장경제학자인 허버트 스펜서의 무덤 되시겠다. 론리플래닛이 재치있게 쓴 대로 막스&스펜서다. 스펜서 무덤 앞은 마르크스 무덤 사진을 좀 더 잘 찍어보려는 사람들로 붐볐다. 현실 경제에서는 스펜서가 마르크스를 이긴 셈일텐데, 이 묘지에서는 단연 마르크스가 스타다. 그러나 한편으로, 마르크스 자체가 상품이 된 것 같다는 생각을 도무지 떨칠 수가 없어서, 결국 그렇담 스펜서가 다시 이긴 건가, 뭐 그런 생각들이...


마르크스 무덤 건너편의, 수많은 보통 사람들의 무덤들. 마르크스가, 사랑했...다기 보다는, 관심을 기울였던 보통 사람들은 이렇게 한 뼘의 땅에, 십자가도 꽃도 없이, 묻혀 있었다. 마르크스가 무덤에서 깨어나 자신의 민망한 흉상과 이 무덤들을 보면 무슨 생각을 할까.
 

세상을 바꾸고 싶었던 것은 마르크스만이 아니었다. 마르크스 무덤 주변에는, 그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땅에서 쫓겨나 먼 나라에서 쓸쓸하게 숨을 거뒀으나, 결코 잊혀지지는 않을 이들이, 손을 뻗으면 닿을 만한 거리에 누워 있었다. 

흑인과 여성의 인권을 위해 싸운 Fighter 였다는 공산주의자 클라우디아 베라 존스도,
저널리스트이자 혁명가였다는 폴 푸트도,
런던으로 망명해 이란 노동 운동을 지도한 마르크스주의 이론가 헤크마트도,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의사로, 또 사회주의 혁명가로 활동하다 결국 쫓겨나 런던에서 숨을 거뒀다는 모하메드 다두도, 그리고 내가 이름을 알지 못하고, 지도에도 실려 있지 않은 수많은 망명 혁명가들과, 마르크스주의자들과, 공산주의자들과, 사회주의자들이, 감기지 않는 눈을 감고 잠들어 있는 것이다. 


하이게이트 묘지에는 드라큐라가 나온다는데, 봄날 오후의 묘지는, 쓸쓸하고 낭만적인 곳이었다. 이끼가 잔뜩 낀 돌들이 여기저기 굴러다니고-런던은 온대 우림 기후 지대임에 틀림없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무덤들과, 십자가들과, 그리고 손을 꼭 잡은 부조들이 아무렇게나, 쌓여 있었다.

남편을 보내고 35년을 더 살아야 했던 엘리자베스 스미스는 천국에서 그를 만나 다시 손을 꼭 붙잡았을까. 

가족의 일원으로 무덤을 갖게 된 고양이도,

본명이십니다.


에드워드 트루러브는 이 윌리엄 포일스와 함께 출판계의 기억할만한 이름이었던 모양이다. 빅토리아 시대의 출판업자이던 트루러브는 불온한 책들을 끊임없이 펴 내다 결국 죽은 뒤 무덤에서 꺼내 목이 잘렸다. 포일스는 뭐, 차링 크로스 로드에 아름다운 서점을 갖고 있는 그 포일스 되겠다.


누군지 모르는 이의, 아름다운 비석. 묘지에 가서 숙연해지는 것은 모든 무덤들이 '사랑하는...'으로 시작되기 때문이 아닐까. 복잡하고, 다단하고, 공허한 일상 때문에 잊고 있지만, 이, 백마가 문틈으로 지나가는 것 같은 인생이 지나가고 나면 남는 것은, 손바닥에 놓인 꽃 한송이일텐데. 


Posted by orca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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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다비코 2011.03.20 13: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가보고 싶은 곳인데 간접 체험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