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리아는 어디일까. 시베리아를 냉전 시절 한 번, 밀레니엄 이후 한 번, 이렇게 두번 다녀오신 콜린 더브런에 따르면, 시베리아는 우랄산맥 동쪽이다. 우랄산맥을 넘자마자 나타나는 예카테린부르그와 투멘을 시작으로 그는, 열심히 기차를 타고, 비행기도 타고, 때로 히치하이크도 해서 동북쪽 끝 가운데 하나, 마가단까지 갔다. 외국에서는 꽤 알려진 작가이고, 글도 잘 쓰는 것 같은데, 뭐, 그렇게 훌륭한지는 모르겠다. 첫째는 이 작가의, 어딘가 모르게 멜랑콜리한 정치적 태도 때문이고, 두번째는 시베리아를 잘 몰라서다. 

어쨌거나, 앞으로 우리나라에도 이런 여행기가 나와야 한다는 점에서 한 표. 여행기는 쏟아지는데 대체로, 나 여기서 이런 맛있는 거 사먹고 이런 멋진 거 샀다는 된장녀 여행기이거나, 혹은 티벳이든 하바나든 어디든 상관없이 자신의 내면을 여행하고 있는 멜랑콜리한 여행기들이 대부분인 것 같다. 여행기는 뭐랄까, 그 지역과 문화적으로, 역사적으로, 철학적으로, 양 손가락들을 깍지끼듯 단단하게 연결돼 있어야 하지 않을까. 거기다 이방인인 작가의 번뜩이는 통찰이 결합되면 더 할 나위 없겠다. 그런 면에서 당사자는 여행기가 아니라고 두 손 저어 부정하지만 주강현의 <적도의 침묵>이라든가, 베르나르 레비의 <아메리칸 버티고>는 훌륭한 여행기라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는 이 여행기도, 그 전통을 보다 대중적인 여행기의 방식으로, 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콜린 더브런은 시베리아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러시아어도 할 줄 알고, 영하 39도 정도는 춥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책과 경험으로 준비도 많이 했다. 이 작가는 책을 관통하며 두 가지 정치적 지향을 드러내는데, 첫째, 스탈린 수용소는 시베리아를 망가뜨렸다. 둘째, 시베리아 원주민은 순수하고 아름답다. 그러나 물론 현실에서 그가 부딪치는 원주민들은 알콜 중독이거나, 그의 물건을 훔쳐가거나, 자식이 외국에 있다는 것이 자랑이거나, 광신도이거나, 그랬다. 그럼에도 콜린 더브런은 자신의 멜랑콜리한 '선입견'을 포기하지 않는다. (전혀 딴 이야기긴 하지만, 원래 여행이 그런 속성을 지니고 있다. 그러다 보면 원주민들이 알아서 여행객의 선입견에 맞게 행동해 주고, 공연도 해 주고, 이야기도 해 준다고, 그것이 staged authenticity'를 만들어 낸다고, 존 우리라는 훌륭하신 사회학자가 지적하시기도 했다)

그런 면에서, 그가 만난 몇몇 원주민들은 가슴만 안 쳤지, '우리는 너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괴롭지만은 않았다'고 주장을 한다. 수용소의 생활이라든가, 스탈린 독재 아래서의 생활이 그렇게, <이반데니소비치의 하루>에 나오는 것 같지는 않다는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살아갈 수 있었겠느냐고, 이제는 나이 들어 종일 미국 캘리포니아가 나오는 드라마만 보던 할머니들은 이야기를 했다. 거기다 나는 밑줄을 그었는데, 작가라든가, 기자라든가, 이런 사람들은 이야기를 극단적으로 몰아가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인생은, 전적으로 슬프지만도, 전적으로 괴롭지만도, 전적으로 행복하지만도 않은 것. 같은 맥락에서, 프리모 레비나 임레 케르테스가 쓴 아우슈비츠도,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끔찍하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이를테면 이런 주문, 

"왜 사람들은 좋은 일들, 매일 매일의 일들을 기록할 수 없는 걸까? 수용소 생활을 보통으로 기술한 기록이 있다면, 사람들은 우리가 늘 울 수만은 없었다는 것, 우리가 탄광에서 나와서 욕실로 노래를 부르며 갔다는 것을 알았을 텐데. 당신은 작가지? 그렇지? 당신이 그런 이야기를 쓰면 어때? 우리가 조금은 미소도 짓고 더러는 츰도 추고 노래도 불렀다는 것을 쓰란 말이야. 사람들은 희망 속에서 살아야 하니까..."76-77

한편 이 책에는 몇가지, 전설같은 시베리아의 이야기들이 기록되어 있는데, 그 중 몇몇은 참으로 아름답다. 매머드를 땅 속에 사는 두더지인데, 햇빛을 보면 죽는다고 생각했다든가, 한겨울에 입김이 얼어 "별들이 속삭이는 소리"를 내며 떨어져 내린다든가, 아주 추운 밤에는 말(언어)이 얼어서 땅에 떨어졌다, 봄이 되면 되살아나 다시 들리게 된다든가, 그래서 봄은 짝사랑하는 연인의 말들, 지나간 소문 같은 것들로 가득 찬다든가, 그런 이야기들은 옮겨 적어 곱게 손수건으로 싸 두고 싶었다. 에벤키, 부랴트, 아무르강, 야크추크 같은 이국의 이름들, 그리고 이런 문장, "그러다가 강의 얼음이 대포 소리 같은 요란한 소리를 내며 깨지는 봄이 오면," (188), 이건 언젠가 봄이 오면, 미니홈피의 프로필 문장으로 써야겠다고도 생각했다. 

하여간, 앞으로 여행기를 쓰려면 이 책을 참고로 해야겠구나, 싶긴 하다. 그러나 이 책처럼, '순수와 구원의 대지 시베리아' 뭐 이런 제목은, 절대 붙이지 말아야겠다. 심지어 표지에 새 한마리가 날고 있어, 이거 딱 교회 책자처럼 보인다. 원제는 '시베리아에서', In Siberia다. 


Posted by orca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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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mignon 2010.10.15 16: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명!!
    이미지도 좀 같이 올려주세여!! 며칠전 문자도 보냈는데, 메신저로는 보이지도 않고.. 글씨도 좀 키워주세요~ 11이나 12로.. 노안이 오는지 잘 안보여요~ 우리도 이제 나이듦을 준비하고 걱정해야할 때!

    이제 환경부 적응은 좀 되셨는지??